美 대법원장 연례 보고서: AI 시대에도 인간 판사는 대체되지 않는다
존 로버츠 미국 대법원장은 연례 사법 보고서를 발표하고 법조계의 AI 도입에 신중함과 겸손함을 당부했습니다. 그는 AI가 사법 접근성을 높이고 연구를 돕겠지만, 환각 문제와 개인정보 우려 탓에 인간 판사의 재량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금도 미국 연방대법원 법정의 변호인석에는 하얀 거위 깃펜이 놓입니다. 잉크병은 수십 년 전 치워졌고 깃펜은 기념품으로만 남았지만, 그만큼 보수적인 사법부의 전통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거센 물결 앞에서 대법원도 더는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존 로버츠 미국 대법원장은 13쪽 분량의 2023년 연례 사법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매년 사법 체계의 핵심 화두를 짚는 이 보고서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은 법조계 전반에 걸친 AI 도입에 대해 "신중함과 겸손함"을 강력히 당부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인간 판사가 조만간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하급심 재판 실무는 근본부터 뒤흔들릴 것이라는 점입니다.
전화 음성 안내에서 AI '환각' 리스크까지
법조계는 원래 기술 도입에 유독 느렸습니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회고에 따르면, 연방 법원이 비서들에게 개인용 컴퓨터를 지급한 것은 1989년의 일이었고, 같은 해 전화 다이얼을 눌러 사건 정보를 듣는 음성 안내 시스템(VCIS)이 겨우 시범 도입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AI는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고 방대한 판례를 눈 깜짝할 사이에 훑어내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문제는 AI 특유의 '환각(hallucination)' 현상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판례를 사실처럼 지어내는 문제가 법정에서 잇따르고 있습니다. 불과 지난주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마이클 코언의 재판 관련 서류에 AI가 꾸며낸 허위 판례가 포함되어 큰 논란이 일었습니다.
하급 법원들은 이미 규제에 착수했습니다. 지난달 뉴올리언스에 위치한 제5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변호사가 서면을 제출할 때 AI를 전혀 쓰지 않았거나, AI가 작성한 내용을 사람이 직접 검증했음을 서약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칙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인간 판사의 '재량'
로버츠 대법원장은 AI를 '양날의 검'으로 규정했습니다. 비싼 수임료를 감당하기 힘든 일반인의 사법 접근성을 높이고 법률 연구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잠재력이 있지만, 사생활 침해 위험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AI는 인간의 고유 영역인 '자유재량(discretion)'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법적 판결은 단순한 규칙 대입이 아니라, 증언의 뉘앙스를 읽고 도덕적 균형을 맞추는 인간적 고뇌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인간 판사는 당분간 계속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나 특히 1심 재판과 같은 사실심 단계에서는 AI 도입으로 인한 업무 방식의 격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왜 중요한가
이번 보고서는 법률 AI를 둘러싼 환상을 걷어내고 책임의 경계선을 명확히 그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일반 시민과 소형 로펌 입장에서 AI는 훌륭한 조력자입니다. 대형 로펌처럼 수많은 보조 인력을 두지 않아도 순식간에 법률 쟁점을 파악할 수 있어 정보 격차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사법의 핵심은 신뢰입니다. AI가 지어낸 가짜 인용구 하나는 단순 실수를 넘어 변호사의 직업적 신뢰와 재판 결과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제5 순회항소법원이 도입하려는 '인간 검증 서약'은 향후 전 세계 법원의 표준 절차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태도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맹목적으로 기술을 배척하지도, 반대로 알고리즘 재판을 과신하지도 않았습니다. 초안 작성과 검색은 AI에 맡기더라도, 판결문에 이름을 걸고 책임을 지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최고 사법 책임자가 재확인한 셈입니다.
출처 (2)
- supremecourt.gov(새 탭에서 열림)원문supremecourt.gov
- siliconangle.com(새 탭에서 열림)보도siliconangle.com